한국 IT 용어 이야기 (5) - "회고", "부검"

Agile 방법론을 제대로 배우기 이전부터 개인이나 팀이 했던 일들을 돌아 보는 일들을 했었고, 아주 오랫동안 두리뭉실하게 'review' 라고 불러 왔었다. monthly review, quarterly review, OKR rating / planning 등.. 리뷰에 관련한 건 다음 토픽으로 남겨 두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돌아봄'에 해당하는 두 단어에 대한 이야기들...

retrospect / 회고

Agile - Sprint 에서 주로 쓴다고 하지만, 이전 Google에서의 (좋았던) 경험으로는 1) 큰 과제가 정신없이 달려와서 런치를 했을 때 축하 파티 하기 직전에 2) 과제가 뭔가 삐걱거리면서 지내왔을 때 재정비하는 의미로 잠깐 쉬어가는 타이밍에 했었던 것들이 있다.

매번 다른 역할이었지만, 관리자의 입장일 때 다음 일감들을 계획하며 나아가기에 유용한 정보들이 모이기도 했었고, 반대의 입장일 때는 억지로 불편한 걸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오히려 불편했던 경험들이 있다. What went well 과 what could be better 의 용어에 익숙해져 있어서 해당하는 기록을 남겨 왔었고, 확실히 대면일 때 효과가 컸던 기억들이다.

Agile 이 지배하는 한국 업계로 들어오며 '회고'라고 불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고로 회고의 영어 번역은 아래와 같이 여럿이다. retrospect 가 명사도 되니 retrospection 은 처음 보는 단어이고, remembrance, reminiscence 가 조금 더 익숙했다.

미국에서 무의식적으로 "retro meeting" 이라고 하면 대충 알아 들었더랬지만, 한국에서 자칫 "retro" 라고 끊어졌다가는 '복고'로 읽히는 애매한 상황이 되었었고, 처음에는 '회고'가 '퇴고'로 들리던 시기도 꽤 있었다.

제한된 경험으로 한국에서 접한 Agile 방법 하에서 회고는 1) 2주마다 매 sprint 를 치르며 2) 의무적으로 회고를 하고 3) 모두가 발언을 하기를 기대하며 4) 꽤 길고 감정 소모가 심했던 기억이다. 그래서인지 scrum 이나 sprint 를 잘 운영하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심했던 거 같고,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는 짧은 영어가 오히려 감정 소모를 덜 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있다.

postmortem / (사후) 부검

Google 에서 일하면서 당연하게 몇 번의 사고를 내게 되었고, 그 때마다 postmortem 에 초대되었다. (https://sre.google/workbook/postmortem-culture/) 내가 만든 코드 혹은 실수로 초대되기도 하고, 남이 낸 사고에 당사자로 불려서 보호 코드를 만드는 이슈를 할당 받기도 하는 등.. 주로 SRE 들이 호출하게 되었고, 물론 그닥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 그 중 하나는 지금 나무위키에 박제되어 있기도... )

lesson 을 모아서 다음에 같은 사고가 생기지 않게 하자는 의미였고, 여기서 생성되는 이슈들은 상대적으로 꽤 중요하게 처리되고 있었고 특히 '운용' 단계의 과제들은 더욱 그러했다. 이 문서에 여러 번 불린다고 해서 성과에 불이익이 있다거나 편견이 생긴다거나 했던 건 아니었다는 확신이긴 하지만, postmortem 이 무서운 단어인 건 변함이 없다.

한국에서도 여러 사건 사고들이 생기고, SRE 가 없더라도 기록을 남기자는 같은 취지에서 postmortem을 쓰는데, 이게 한국말에서는 조금 더 무서운 번역이 된다.

물론 4. 가 정확하다 하겠다. 죽을 사(死)가 아닌 일 사(事)이겠지만, 한자 표기 없이 '사후 검토'라고 불리기 보다는 '부검'으로 많이들 불렀고, 별 고민 없이 '사후 부검', 혹은 '사후 검토'라고 했을 때 죽을 사(死)가 먼저 어른어른 거린다.

한국 정서에서는 (아마도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시말서, 경위서에 가까워서 조금 더 불편하고, action item 들에 대한 강제력이 회사 규모 따라 달라서 어려웠던 기억들이다. 운영 위주의 팀들에게는 분명 도움 되겠지만, 해야 할 일로 기도하자 버티자 등이 나오는 상황도 어쩔 수 없이 생겼던 기억이고, 테크 이외의 조직들이 엮이게 되면 난이도도 많이 올라간다.

최근에 여러 뉴스들에서 좀 더 보이던데, 사고들과 사투를 벌이는, 본인의 의지와 관련이 없더라도 연관이 되신 분들의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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