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터뷰 #7] 14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 김지홍의 고민과 실험
인프런
총 2개 코스
16명 참여중
조회수
1,835
로드맵 코스
in터뷰, 인프런이 인터뷰하다.
인프런의 새로운 콘텐츠,
다양한 직무와 직군 사람들의 성장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14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 김지홍의 고민과 실험
올해 9년차를 맞이한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 스펙트럼>을 아시나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디자인 스펙트럼>의 빌더이자 14년차 디자이너인 김지홍 님을 만났습니다.
대기업부터 스타트업, 디자인 커뮤니티에서 교육까지 - 정말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지홍님의 커리어 여정을 따라가며 저 또한 건강한 자극을 받았는데요. 지금 시작하는 디자이너 부터 커리어와 성장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분들에게 지홍님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ditor 옥돌
처음 뵙는 분들을 위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UX 디자이너로 14년차가 된 디자이너 김지홍이고요. UX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지금은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 교육, 그리고 디자인 크리에이터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요즘 디자인 스펙트럼 커뮤니티는 예전보다는 로우 템포로 진행하고 있어요. 12월에 진행한 스펙트럼콘 마무리하고 디자인 테이블(팟캐스트)을 조금씩 릴리즈 했고요. 작년 9월부터 오픈패스라는 디자인 아카데미에서도 어드바이저로 같이 일하고 있어요. 지금은 거의 풀타임 출근처럼 하고 있고, 디자인 교육 플랫폼이자 커뮤니티로서도 기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작년에 EO 채널에서 <김지홍의 아하 모먼트>를 했던 게 실험의 일부였는데요. 크리에이터 활동도 계속 노크하고 있어서 올해 좀 더 본격적으로 할 것 같아요. 세 가지죠. 1)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2) 디자인 교육 플랫폼을 운영하는 걸 돕고 3) 크리에이터로서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지홍의 아하 모먼트> ⓒ EO, 김지홍
그렇군요. 올해는 크리에이터 부분에 조금 더 방점을 찍게 되는 걸까요?
더 하고 싶어요. 제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많아져서 많이 시도해 볼 것 같아요.
지홍님이 디자인을 업, 또는 전공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순간이 있을까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셨는데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하신 계기도 궁금해요.
사실 특별한 건 없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 공립 고등학교에 1년 정도 잠시 있었어요. 학교에서 영어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다가 Advanced Art Class를 들으면서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영어도 조금씩 늘다 보니 자신감이 붙은 매개가 미술이어서 고3 때 한국으로 돌아와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됐어요. 사소한 건데 그리는 게 즐겁다는 걸 그때 안 거죠.
중고등학교 때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좋아하면서 그리는 건 취미로 좋아하는 게 컸는데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게 미국 고등학교 생활이었고 돌아와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미술인지 디자인인지를 고민해 봤어요. 그리고 미술 학원에서 상담을 통해 디자인을 (선택)했죠. 고3 때까지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디자인을 간 거죠.
근데 디자인과에 입학한다고 해서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할 거라는 부분에 선명하게 해상도를 높여주지 않거든요. 그래서 1학년 학부 때도 고민하다가 군대 갈 때도 고민하고 3학년 때 마음잡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삼성 디자인 멤버십이라고 삼성에서 2년제로 운영하는 일종의 인턴십 프로그램이 있어요. 삼성 디자인 인턴십에 들어가 보니 내가 디자이너로 일하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겠다는 상이 서는 거죠. 그때부터 완전히 집중했어요. 1-2학년 때는 좀 많이 놀았거든요. 3-4학년 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밤도 많이 새고,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나 모바일 디자인 공부도 제일 많이 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시기도 좋았어요. 2007~2010년 사이에 아이폰 나오고 스티브 잡스, 조너선 아이브가 활동을 하던 때다 보니 기술의 변화나 애플리케이션, iOS 생태계 담론이 올라올 때라, 나도 모르게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죠.
여기 판교잖아요. 삼성에 입사해서도 판교에 자주 왔거든요. 한국의 실리콘밸리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좋지만 당시에도 에너지가 올라오던 시기여서 입사 초반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기술의 변화를 목도하고 기술의 변화가 동료, 친구,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연구하는 순간순간이 너무 재밌었어요. 뭔가 확실히 라이브 되어 있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디자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스펙트럼 커뮤니티가 벌써 9년 차더라고요.
그러게요. 처음에 10년은 뭐가 돼도 해보자가 목표였거든요. 이제 거의 다 와가네요.
스펙트럼콘 전경 ⓒ디자인 스펙트럼
스펙트럼데이 ⓒ디자인 스펙트럼
디자인 스펙트럼을 만들게 된 첫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그럼요. 외부 강연에서는 종종 얘기한 적이 있어요. 저는 운이 좋게도 실리콘밸리에 있는 외국인 디자이너, 개발자와 협업하는 팀에서 2년을 있었고, 그 팀에서 일하면서 외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암스테르담에 가서 같이 10일 정도 합숙하면서 외국 디자이너, 개발자랑 제품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실리콘밸리에 가서 사람들과 일하기도 하고 그들이 한국에 오기도 하면서, 기존에 삼성에서 배웠던 도구적인 지식이나 학문적인 지식 말고도 뭔가 다른 방식과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기술적으로도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인프런이나, 서핏에서 여러 디자인 크리에이터 분들이 굉장히 다각적인 지식과 경험들을 알리는데 14~15년에는 이런 걸 알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제가 시작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니까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팀이랑 복작복작 만들면서 재미있게 일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2015년에는 스케치라는 디자인 도구가 있었는데 스케치도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외국 디자이너랑 일하면서 배웠던 도구였어요. 그래서 스케치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라고 생각을 한 거죠. 스케치 앱을 만든 네덜란드의 보헤미안 코딩에 연락하고 스케치 공식 커뮤니티를 한국에 열면서 삼성전자 외의 스타트업이나 다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주중에는 회사 일에 눈코뜰새 없었지만 주말에는 판교에 자주 오가며 카카오, 라인, 네이버, 스타트업에 계신 분들을 만나면서 커뮤니티의 원형이 되는 활동을 시작했어요. 한 1년 지났을까, 당시는 프로토타이핑, UI 툴의 춘추 전국 시대라서 스케치, 프레이머, 프로젝트 코멧(후에 어도비 XD) 등 툴별로 다 소규모 그룹이 있었어요.
2015년 말 16년 초에 다 모여서 한번 행사를 하자 해서, 서울숲에 있는 카우앤독에서 레츠라는 행사를 열었어요. 행사 끝나고 서울숲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얘기 나왔던 게 디자인은 개발 생태계보다도 훨씬 작은데 우리가 이렇게 파편화돼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서로 학습하면서 교류를 많이 해야 도움이 되니까 같이 다양한 것들을 얘기해 보자. 그래서 만들어진 게 디자인 스펙트럼이고 2017년 2월에 시작이 됐죠. 그리고 저는 회사를 나왔어요.
*크리에이터들이 모여서 각자의 스피치를 하는 레츠라는 포맷이 있다.
2017 2월 첫 스펙트럼데이 ⓒ디자인스펙트럼
지홍 님에겐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순간이네요.
다시 하라면 안 나올 것 같아요.(웃음) 회사에 있으면서 돈을 조금 더 모으고 나왔을 것 같아요. 1년 뒤에 스펙트럼을 오픈했어도 반응은 비슷했을 것 같거든요. 2017~2020년까지는 IT 테크 쪽의 흐름이나 사람들의 관심 이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돈을 모으고 나왔으면 더 원활하게 운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첫 시작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스펙트럼을 운영하면서도 굉장히 소중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때 같이 하셨던 분들이 지금 테크 씬에서 시니어 디자인 리더로서 좋은 역할을 하고 계시고 여전히 스펙트럼콘 할 때도 시간 되는 분들은 오셔서 돕거든요. 정말 소중하고 좋은 인연이에요.
ⓒ디자인 스펙트럼
디자인 커뮤니티를 운영하시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있나요?
지금보다 한 발짝 앞서 나아간 도구를 중심으로 그룹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모였다 보니 어느 순간 다루는 주제가 대부분 실리콘밸리에서 뭘 하고 있는지 지금 기술적으로 어떤 게 제일 중요한 지, 이걸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위주로 다뤘어요. 캐즘*에서 Early Majority와 Late Majority 얘기를 하는데 저희는 조금 앞단에 있는 얼리 어댑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죠. 근데 커뮤니티의 중심을 이루는 분들은 앞단에 있는 분들이 아니었거든요.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가 겪는 일시적인 침체기
스펙트럼이나 디자인 테이블 팟캐스트에서 다루는 주제를 보면 다른 별 세상에 있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후기를 남겨주신 분이 있었어요. “지금 내가 직장에 가서 하는 건 포토샵 열고 피그마나 스케치 안 쓰고 선형적인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비효율적인 업무를 하는 것도 굉장히 많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다뤄주지는 않다 보니까 고맙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 언젠가 현실적인 부분도 다뤘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고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걸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콘텐츠 회사는 아니니 책임은 없더라도 커뮤니티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음을 인지했고 그때부터 예를 들면 연봉, 유리 천장에 대한 이야기 등 현실적인 부분도 다루기 시작했죠.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면 연사를 모집하기도 어렵고, 우려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회사가 아닌 커뮤니티였기 때문에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디자인 스펙트럼
인프콘도 잘 하시지만, 컨퍼런스를 운영하다 보면 일부러 주니어 분들을 모시거나, 외부에 많이 알려진 리더보다는 중니어 아니면 시니어 초입의 분들을 모시는 게 이 부분과도 연결이 되고요. 이미 아웃풋을 많이 외부에 보낸 분들보다는 ‘충분한 인풋을 혼자서, 또는 각 팀에서 수련하며 쌓아온 것들을 아직 외부에 드러내지 못한 분에게 최대한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인드도 이때 생겼어요. 그전에는 유명한 분들을 모시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콘텐츠의 파급력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오히려 콘텐츠 회사면 맞는데 커뮤니티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저희의 파급력이나 스케일업에 스스로 제약을 걸기도 한 거고요. 항상 밸런스 게임을 하고 있어요.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이렇게 섬세한 고민들이 들어간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실 것 같아요.
저는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까 체화된 게 많고 약간 무뎌지거나 내려놓은 것도 꽤 있거든요. 예를 들어 하이아웃풋클럽(HOC) 같은 곳이나 지금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몇몇 유료 커뮤니티가 눈에 띄는데 거기선 더 섬세하게 고민하실 것 같아요.
올해는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모아서 제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교육기관인 ‘오픈 패스’에서 디자이너를 위한 커뮤니티 멤버십을 만들려고해요. 스펙트럼 커뮤니티의 키워드가 ‘느슨한 연대’였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허들이 낮기 때문에 누구나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영했는데 그러다 보니 장기적으로 힘이 떨어지는 걸 느껴요.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뎁스를 추가하는 쪽으로도 실험해 보고 디자인 스펙트럼 커뮤니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라 하이아웃풋클럽이나 솔로프리너 등이 좋은 참고가 되죠.
24년에 정말 많은 활동들을 하셨는데 진짜 이렇게 하시는 원동력이 어떤 걸까요?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의 반 정도밖에 못 했어요. 24년 3월, 라포랩스를 퇴사할 때 생각은 크리에이터로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제가 아직은 30대지만 좀 있으면 40대가 되기 때문에 최대한 체력적, 정신적으로도 욕심이 있을 때 더 많은 활동을 시도해 보면서 뭐가 나에게 맞는 옷이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인지를 더 실험해 봐야 한다는 마음이 정말 컸어요.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재밌고 팀과 함께하는 것도 너무 즐거운 일인데, 저라는 사람이 회사에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항상 하는 것 같아요.
라포랩스를 떠나면서 ‘2년 정도는 미친듯이 도전해 보자’라고 다짐했어요. 그래야 나중에 회사에 돌아가더라도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EO에서 <아하 모먼트>를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어요. EO 같은 경우는 스타트업 & 테크에선 대중적인 채널이기 때문에 하나의 콘텐츠에 많은 의견들이 오가는데요. 그런 것들을 감안하면서 협업했어요. 기존에는 항상 상대적으로 심리전 안전감이 높은 디자인 필드 안에서만 활동했거든요. 실제로 <아하 모먼트>에서 조회 수가 높은 영상은 댓글의 온도감이 꽤 높은 상태였죠. 그런 부분도 감당하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고 제게 꼭 필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EO, 김지홍
24년도에는 외부와 협업을 많이 했었는데요. 25년 3월부터는 제 개인 콘텐츠를 어떻게든 해보겠다가 지금의 욕심이에요. 이 욕심이 지속되는 원동력은 ‘후회하고 싶지 않아’ 라는 마음인 것 같아요. 나중에 회사로 돌아갈지, 풀타임 디자이너로 아니면 크리에이터를 계속할 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때 도전해 볼 걸이라는 후회를 하는 게 너무 싫은 거죠. 그런 관점에선 작년도 모자랐고, 더 했어야 된다. 이거밖에 못한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진짜 건강 관리 잘해야 되는 거 같아요. 더 하지 못한 이유가 체력적인 문제가 제일 컸거든요. 체력적으로 따라오지 못하니까 더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작년에 진짜 엄청 줄였어요. 그래서 올해는 몸 관리하면서 무조건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욕심쟁이셨군요..! (웃음)
진짜 해야 돼요.(단호)
대기업부터 스타트업, 교육에서 커뮤니티까지 디자인 분야에서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아오신 분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홍 님의 커리어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시기였을지요?
삼성전자에서 나와 디자인 커뮤니티를 시작한 게 큰 변화 중에 하나고요. 지금 시기가 두 번째 페이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실험하고, 도전해야 다음 10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인 스펙트럼이 2017년 부터 10년이 되어 가잖아요. 테크 씬에서도 그렇지만 한 사이클을 10년 정도로 보기 때문에 저는 하나의 사이클이 끝나간다고 느껴요. 스펙트럼이라는 이름,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만드는 콘텐츠가 실제로 힘이 꽤 약해졌어요. 올해 제가 얼마나 다채롭고 실제로 테크/디자인 씬에 있는 분들에게 유의미한 콘텐츠를 전달하느냐에 있어서 모든 방향이 바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이 두번째 변화의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진짜 듭니다.
ⓒ디자인 스펙트럼
ⓒ디자인 스펙트럼
작년에 지홍 님의 글을 보면 심경의 변화가 느껴졌어요. 꽤 지쳐 있었다고 쓰셨는데 24년은 어떤 한 해였나요?
전 제 커리어와 관련된 여러 도전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요. 그런데 24년 초에는 다소 아쉬운 과정과 결론으로 회사 생활을 마무리한 경험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그 경험이 제게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이후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머릿 속에 남아있더라구요. ‘다음 도전은 실패하면 안돼,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원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했다가 망하면 다음에 더 잘하면 돼, 처음 시도하면 실패할 확률이 90%가 넘고, 그걸 다지면서 올라가는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했던 모든 활동들은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지고 했던거죠. 그래서 오히려 어색하거나 안 좋은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들이 꽤 있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서 24년의 후회가 컸던 것 같아요. 다행히 시간이 약이다 보니까 지금은 다시 돌아왔고, 2년은 더 도전한다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디자인 스펙트럼
지홍 님이 해오신 다양한 활동들 중에서 특별히 집중하고 애정을 갖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일일까요?
하나는 디자인 테이블이고 하나는 스펙트럼 콘, 하나는 교육 활동 자체를 계속 영위하는 거예요. 디자인 테이블은 물리적으로 제약이 있는 분들도 항상 들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되길 바라면서 만들었기에 만약 디자인 스펙트럼이 모양을 바꾸더라도 계속할 거예요.
스펙트럼콘은 오랫동안 디자인 컨퍼런스로서 테크 쪽 디자이너분들한테는 좋은 자리였어요. 오프라인으로 직접 오신 분들이 남겨주신 피드백 중에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걸 보는 것 자체가 에너지가 된다는 후기들이 있었어요. 그런 목소리들이 쌓이는걸 보다보면 너무너무 소중하죠.
콘텐츠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임파워링을 시킬 순 있는데 직접적으로 어떤 기회를 만들어 주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교육 활동을 계속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팟캐스트나 컨퍼런스에 오셔서 영감과 에너지를 받은 분들이 다음 스텝을 찾을 때 적합한 걸 제공해 드리고 싶은 거죠.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제일 애정이 큰 부분이에요.
지홍 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져요. 10년 이후를 생각했을 때 그려지는 그림이 있을까요?
10년 뒤면 40대 후반이겠네요. 저는 사람들에게 기회와 연결되는 교육의 요람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요. 오프라인이면 좋겠구요. 디자인의 역사를 공부하신 분들은 바우하우스라는 교육 기관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텐데요. 바우하우스가 실제 실무를 기반으로 스승과 학생들을 일종의 도제식으로 연결하면서 교육과 현장에서의 갭을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교육을 시도한 실험적인 디자인 기관이거든요.
ⓒbauhaus
그런 교육을 디자이너나 메이커,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지금은 회사에 재직하는 분들이 많지만 과연 회사 내의 고용 관계로 재직하는 형태가 계속 지속이 될까? 스몰 브랜드나 1인으로 일하는 형태가 더 흔해지지 않을까? 하는 예측과 관심과도 연결이 되어 있고요.
온라인에서 지식을 배우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할거에요. 저는 그렇게 간접적인 경험을 거친 분들이직접적인 경험과 지혜를 배우고 싶을 때 실제 공간에서 물리적인 환경들을 제공하고 싶어요. 그걸 10년 뒤에 이룰 수 있다면, 아니,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저의 지난 10년간 대부분의 활동들은 모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씩 시도해보고 나아가고 있는거죠.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을 연결을 하고 교육 활동을 하는 것. B2C B2B B2G 교육을 다 해보고 있거든요. 3개 트랙을 다 하고 있는데요. 이런 활동들이 나중에 실제로 학교를 세웠을 때 다 자양분이 되고 연결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들이랑 맥주 한잔 하면 하는 얘기가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이 있어요. 학교를 세우면 학교에 정원이 있을 건데요. 아침에 제가 학교 문을 열고 정원에 물을 주고 햇살이 들어오는 그림이 선명해요. 교육 기관이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건물이어도 좋겠지만, 지구라는 땅을 밟고 사니까 자연, 토양 안에서 배움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 그림을 10년, 모자란다면 20년이 걸리더라도 그리고 싶어요.
ⓒ펜연필독약
돈을 많이 버시길 응원하겠습니다. 혹은 비슷한 생각을 지닌 투자자를 만날 수 있길..! 지홍 님은 5년 전에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지금도 잘 하진 못하고 있지만)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 좀 멀어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커뮤니티를 하면서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착한 사람 증후군 같은 거 있잖아요. 커뮤니티의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고, 만족시키고 싶은 약간의 오만함이랄까요. 근데 불가능하잖아요.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좋은 소리만 듣겠다는 게 불가능한 일인데 그런 부분들에 꽤 예민했던 순간들이 많았고, 5년 전이면 딱 그 시기인 것 같아요. VOC를 듣는 건 굉장히 소중하고 필요한 경험이지만 VOC 하나하나에 매몰되어서 내가 앞으로 가는 발걸음을 늦추고 있다면 덫은 과감하게 떼어낼 때가 필요가 있어요. 거기서 벗어나야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앞으로의 모든 활동에도 유효한 부분이고요.
그래서 <아하 모먼트>도 개인적으로는 수련의 시간이었어요. ‘이런 걸 왜 하냐’, ‘저 진행자는 누구길래 진행을 하냐’부터 시작해서 댓글이 엄청났어요. 사실 저에 대한 반응이야 저혼자 넘기면 되는건데 제일 곤란한 건 게스트 분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발생하는거죠. 제일 반응이 잘 나왔던 콘텐츠가 이종범 작가님이 등장하신 웹툰 콘텐츠였는데 댓글이 굉장히 많았고 당연히 좋은 반응, 나쁜 반응이 모두 섞여있었어요. 이종범 작가님은 대중 콘텐츠 경험이 워낙 많으시다보니 모두 웃어넘기셨지만, 진행자인 제 입장에선 걱정이 됐었죠.
정희연 토스 CDO님이 나오셨던 아하모먼트의 첫번째 영상도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의 입장에서는 무척 건강한 내용들이었는데요. 심지어 내용과는 상관없이 토스에 대한 반감으로 댓글을 다는 분들이 꽤 계셨어요. 그런 경험들을 거치면서 저 스스로는 이제 내성이 많이 갖춰진 것 같아요. 모든 댓글들은 관심의 일환이니까 너무 선만 넘지 않으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라는 생각도 들고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마인드가 갖춰지신 것 같아요.
실제로 작년 한 해 동안 제가 기존 10년 동안 봤던 크리에이터 분들보다 더 많은 수의 크리에이터 분들을 만났기 때문에 스며들고 있습니다.(웃음) 작년 겨울부터 디자인 크리에이터 모임을 서포트하고 있어요. 크리에이터 개더링이라고 에이핫, 디고디원찬, 성문 님과 함께 디자인 크리에이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쪽으로 크고 작은 크리에이터 분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에요. 1인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힘듦, 더 좋은 제작자가 되기 위한 전략이나 마인드와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저희가 스펙트럼 10년 동안 하면서는 전혀 안 다뤘던 주제죠. 그렇기에 모두 새롭고, 무척 힘이 됩니다.
ⓒ크리에이터 개더링
지홍 님께서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은?
지금까지 그려온 걸 더 잘할 수 있도록 몸과 정신을 만드는 건데요. 몸을 만드는 건 운동을 하면 되잖아요. 근데 정신은 인풋이 없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지난 3년 정도는 인풋보다 아웃풋이 많은 생활을 계속했고, 그게 작년에 마주했던 힘듦의 원인이기도 했어요.
계속 활동을 하면서도 왜 스스로 아쉬움을 느끼지를 돌아보면, 제가 그만큼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소한의 루틴을 확보해서 몸과 정신이 건강할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해요. 무리하게 야근하지 말자. 이제 그럴 수 있는 시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인프런에서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요. 지홍 님께서 생각하시는 성장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확고한데요. 저한테는 얼마나 오랫동안 민첩하게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지가 성장이거든요. 민첩하게만 대응하는 거면 공부 빡, 야근 빡 하면서 그때그때 변화에 대응하고, 내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가 있어요. 근데 그게 장기적으로 되지 않으면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번아웃이 크게 오고 기복이 커지거든요.
저는 어느 순간 이 축이 무너져 있었어요. 예를 들어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요. 그럼 공부랑 운동을 안 해요. 근데 할 시간이 정말 없었나? 스스로 알잖아요. 정말 못할 만큼 네가 바빴어? 오바마나 일론머스크도 하는데 네가 못 할 리가 없다.. (웃음) 그래서 노력하고 있어요. 몸과 정신, 사람과의 관계를 가꾸는 거, 세 개가 균형을 갖춰야 내가 성장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우 구체적인 기준을 갖고 계시네요.
네 그래서 스스로 채찍질하기가 좋아요. 요번엔 운동을 안 했고, 책은 많이 읽었는데 사람을 안 만났다. 이번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운동도 했는데 책을 안 읽었고 이렇게 정량화할 수 있어요. 일종의 직업병일 수 있는데 성장을 정량화 하고 싶은 거예요. (해냈을 때) 자신감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고요.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지홍님의 커리어에서 영감을 주었던 콘텐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토스에서 만드는 디자인 컨퍼런스인 <Simplicity>고요. 두 번째는 <최성운의 사고 실험>에서 이동진 평론가님 에피소드 1편이에요.
토스는 Simplicity를 3회차 정도 했을 텐데요. 제 생각에는 만약 컨퍼런스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토스를 알리고 채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면 굳이 컨퍼런스를 안 해도 되거든요. 저는 Simplicity가 CSR, 일종의 사회 환원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토스 디자이너들이 심플리시티를 그 정도의 퀄리티로 하려면 업무 외의 시간을 진짜 많이 써야 되거든요.
실제로 오랜 기간 공수를 들인 콘텐츠이고,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스스로 높은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단순히 자랑이 아니라, 그들이 겪은 어려움이나 성취를 정갈하게 정돈해서 다른 사람들이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미 많은 걸 이뤄낸 회사가 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청사진이라고 생각을 해요. 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들고요. 회사가 이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면 커뮤니티는 어디까지 다루면 될까, 하는 포지셔닝을 잡는 데도 도움을 줬어요.
두 번째는 <최성운의 사고 실험 - 이동진 평론가 님 에피소드>인데요. 이동진 평론가가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들이 에너지를 잃고 내리막을 걸을 땐 내 인풋보다 아웃풋이 막대하게 커질 때다.” 그 말을 듣는데 지난 3년 간 인풋이 얼마나 있었지 대한 고민이 들더라고요. 우리는 보통 내가 배운 것, 했던 것을 바탕으로 아웃풋을 내잖아요.
제가 2년간 개인 회고를 디테일하게 안 했어요. 자기 발전을 소홀히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영상이 47분 분량이거든요. 좋은 얘기가 많았는데 그 워딩에서 딱 멈췄어요. 이거다. 지난 1년 동안 활동하면서도 공허함과 허무감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밖에서, 큰 채널과 행사에서 얘기하면서 지금까지 모았던 것들을 계속 탕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조바심이 들거나 아니면 아쉬움이 들지 않았을 텐데... 명백하게 정신적인 부분을 못 챙긴 거다. 그 에피소드가 저한테 최근 한 달간은 되게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좋은 타이밍이었어요. 한 해를 시작하고 또 준비를 해야 되니까, 구정 때 누워서 어떡하지 생각했었죠. (웃음)
지홍 님과의 인터뷰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앞으로도 in터뷰는 "일, 커리어, 성장" 이라는 테마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
로드맵 상세보기
총 2개 코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