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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교양] 오라클의 불가항력 선언? 도미노의 첫 번째 타일이다.

장용하

2026. 09. 28. 14:14

수정됨

본 클립은 경제ㆍ금융ㆍ투자에 관한 지식을 나누는 『취미로 투자』 프로젝트의 기록과 성장 과정입니다.


뉴멕시코주 도냐아나 카운티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작은 균열이 생겼다. 오라클이 구축하려던 초대형 데이터센터 부지에 가스관 허가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한 행정 절차의 지연이나 지방정부의 심술 정도로 여긴다. 법원의 도장 하나만 찍히면 다시 돌아갈 일회성 소동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시스템이 무너지는 방식은 언제나 이와 같았다. 댐은 중앙의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물이 스며든 가장자리 흙탕물 한 줄기에서부터 터진다.

 

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거대한 기계는 부품 하나가 멈출 때 멈춘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탑을 떠받치는 기둥은 겉보기에 세 개다.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이를 계산하는 반도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굴리는 물리적 기반이다.
사람들은 앞의 두 가지만 보았다. 코드는 무한히 복사할 수 있고 칩은 공장에서 찍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리적 기반은 완전히 다른 법칙을 따른다. 전력선과 변압기, 냉각수와 가스관은 땅을 파고 쇠를 깎아야만 생긴다.
원자력 발전소 두 기 분량인 2.45기가와트의 전력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흙을 파지 못하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수십조 원어치의 첨단 칩은 그저 전기를 먹지 못하는 차가운 실리콘 조각에 불과하다. 그렇게 시스템의 속도는 가장 빠른 칩이 아니라 가장 느린 파이프가 결정한다.

 

손실을 남에게 떠넘기는 합법적 기술
상황이 어긋났을 때 기업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구조가 보인다. 오라클은 최근 5개 분기 동안 291억 달러의 현금을 태웠다. 통장의 잉여 현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계약서에는 어떤 재앙이 와도 월세를 내야 한다는 가혹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Hell-or-high-water). 원래대로라면 전기나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도 약속된 기한부터 매년 수조 원의 돈을 건물주에게 바쳐야 한다. 하지만 회사의 현금이 마르면 계약서의 활자는 힘을 잃는다.
오라클이 꺼내 든 불가항력이라는 카드는 법정에 억지를 부리는 행위가 아니다. 시간을 벌고 지연배상금을 피하며 은행들의 목을 쥐기 위한 냉정한 계산이다. 가만히 있으면 확실하게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그러나 판을 흔들면 살길이 열린다. 내가 망하면 180억 달러를 빌려준 은행단도 다 같이 죽는다며 협박한다. 금융의 세계에서 빚이 천문학적으로 커지면 채무자는 인질에서 인질범이 된다.

 

가격을 매기지 않아 안전해 보였던 착시
돈은 어디서 왔는가. 이번 사업의 허리를 받친 것은 은행의 공식 창구가 아닌 사모신용이라는 그림자 금융이었다.
사모 대출은 주식이나 상장 채권처럼 매일 시장에서 시세를 매기지 않는다. 가격표가 매일 바뀌지 않으니 사람들은 이것이 안전하고 변동성이 없다고 착각했다. 이것은 계기판을 테이프로 가려놓고 비행기가 평온하게 날고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오라클이 불가항력을 명분으로 사실상 발을 빼려 하자 장부상 100센트로 적혀 있던 대출 채권 가격은 89센트로 가라앉았다. 감추어 두었던 부실의 윤곽이 드러났다. 시가평가를 하지 않아 평화로워 보였던 거대한 부채의 저수지에 처음으로 수문이 열린 셈이다.


도미노가 쓰러지는 순서
하나의 사건은 고립되어 끝나지 않는다. 하중은 옆으로 번진다.
은행들은 이제 다른 인공지능 인프라 사업의 대출 심사 서류를 다시 들여다본다. 땅을 파지 못한 데이터센터가 뉴멕시코 하나뿐일 리 없다. 돈줄이 죄어들면 돈을 빌리는 비용이 올라간다.
자본 조달 비용이 오르면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빅테크도 계산기를 다시 두드릴 수밖에 없다. 한 해에 수천억 달러씩 쏟아붓던 무차별 설비투자는 제동이 걸린다.
인프라 증설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곳은 칩 제조사다. 납품을 기다리던 주문서가 취소되고 장부상 재고가 쌓인다. 기술의 미래를 찬양하며 주가에 얹어두었던 터무니없는 프리미엄이 깎여 나간다.

 

사막에서 들려온 조용한 굉음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버블은 거창한 종소리와 함께 종료를 알리지 않았다. 아주 작고 평범한 지점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화려한 연회장의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느라 발밑의 바닥재가 썩어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인공지능 혁명이라는 거대한 기차가 멈춰 서는 이유는 지능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그 열차를 움직일 석탄이 모자라고 철로를 받치는 자갈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ㅇ
뉴멕시코의 파이프라인 중단은 외딴 사막의 국지적 사고가 아니다. 무한한 빚과 물리적 한계를 외면한 채 달려온 거대한 금융 복합체가 마침내 현실의 벽과 부딪히며 내기 시작한 첫 번째 파열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