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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교양] 지난 15년간 미국 주가를 끌어올린 진짜 엔진, 혁신이 아니었다?

장용하

2026. 09. 27. 15:30

수정됨

본 클립은 경제ㆍ금융ㆍ투자에 관한 지식을 나누는 『취미로 투자』 프로젝트의 기록과 성장 과정입니다.

 

피자 한 판이 있다. 여덟 조각으로 나누면 한 사람이 한 조각을 먹는다. 네 조각으로 나누면 한 사람이 두 조각을 먹는다. 피자는 커지지 않았다. 단지 나누는 칼질의 횟수를 줄였을 뿐이다. 지난 15년 동안 미국 증시가 보여준 눈부신 성장의 상당 부분은 이 단순한 나눗셈에서 출발했다. 기업들은 더 많은 빵을 구워낸 것이 아니라, 식탁에 앉은 의자의 수를 물리적으로 치워버렸다.

 

분수를 조작하는 가장 쉬운 방법

주당순이익(EPS, Earnings Per Share)이라는 지표는 기업의 성적표다. 순이익을 총 주식 수로 나눈 단순한 분수다. 이 숫자를 올리는 정석적인 방법은 분자를 키우는 일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더 많은 고객을 모으고, 공장의 효율을 높여 이익을 남긴다. 이것은 지독히 어렵고 고통스럽다. 실패할 위험도 크다.

반면 분모를 줄이는 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쉽다. 회사가 번 돈으로, 혹은 빚을 내어 시중에 돌아다니는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인 뒤 소각하면 된다. 순이익이 작년과 완전히 같아도 주식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면 주당순이익은 하룻밤 사이에 두 배로 뛴다. 세상은 이 회사가 두 배로 성장했다고 착각하며 높은 주가를 매긴다.

 

공짜 돈이 설계한 완벽한 유인책

인간은 주어지는 보상 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경영진에게 주당순이익 목표를 달성하면 수백억 원의 성과급을 주겠다고 약속하면, 그들은 반드시 그 숫자를 만들어낼 가장 저항이 적은 경로를 택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돈을 들여오는 가격은 사실상 0%였다.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은 연 2%도 안 되는 헐값에 얼마든지 회사채를 찍어낼 수 있었다. 경영진의 계산기는 명확하게 돌아갔다. 연 2%의 이자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들이면, 이자 비용보다 주식 수 감소로 얻는 이익 증가 폭이 압도적으로 컸다. 주가는 치솟았고 경영진은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겼다. 불확실한 연구개발에 전적으로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금융 공학이라는 영구기관이 스스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숫자가 부딪힌 물리적 한계선

하지만 그 영구기관이란 것은 현실에서 영원히 돌 수 없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S&P500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돈은 수조 달러에 달했다. 내로라하는 기술 기업조차 미래 기술 개발보다 자기 주식을 사들이는 데 수없이 많은 현금을 썼다. 대차대조표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장부상 순자산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그래도 주가가 오르기에 아무도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을 못 했다.

그러나 모든 차익거래에는 끝이 있다. 공짜 돈의 시대가 저물고 기준금리가 5% 위로 안착했다. 2%대로 빌렸던 수천조 원의 빚이 이제 순차적으로 만기를 맞이한다. 과거의 빚을 갚고 새로 채권을 발행하려면 이제 6%가 넘는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 빚을 내서 주식을 사들이던 마법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섰다. 이제는 주식을 사들이기는커녕,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과거에 흥청망청 빌려 쓴 빚의 이자를 갚는 데 쏟아부어야 한다.

 

거꾸로 도는 거대한 바퀴

바퀴는 이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차환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투자를 중단하고, 비용을 깎고, 결국에는 빚을 갚기 위해 새로운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파는 유상증자를 감행해야 한다.

신주가 발행되는 순간 분모는 다시 팽창한다. 늘어난 주식 수로 인해 주당순이익은 급격히 쪼그라든다. 지난 15년간 자사주 매입이라는 칼질로 부풀려온 숫자의 탑이, 정확히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역재생하며 무너져 내릴 차례가 왔다.

실제 생산성의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나눗셈의 눈속임은 결국 원래의 자리로 회귀한다. 금리는 단순한 금융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허상과 실재를 가르는 경제의 중력이다. 중력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바닥은 생각보다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