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등하원 길엔 크록스를 신지 않아

등하원 길엔 크록스를 신지 않아
등하원 길 작은 선택이 아이의 자존감을 만든다.
사실 등하원 길은, 알고 보면
내가 아이에게 나를 보여주는 시간이더라구.
맨발로 크록스 신는 거, 난 그게 그렇게 싫더라.
양말에 크록스를 신어도 싫고,
흰색 크록스가 얼마나 안 닦았는지 거뭇거뭇해 보이면,
그게 또 그렇게 싫더라.
아이들도 느낀다는 거.
어떤 엄마는 예쁘게, 혹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등하원 길에 오는데,
우리 엄마는 집에서 입던 그대로의 편한 복장에
맨발 크록스를 신고 온다는 거지.
물론 아이들이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아.
그런데 그게 매일 반복되잖아.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무심코 이렇게 말한대.
"엄마, 엄마도 저렇게 입고 오면 안 돼?
저 친구 엄마 되게 예쁜 거 같아."
별거 아닌 말 같지만,
사실 이 나이 아이들은 이미 비교를 시작했다는 거야.
친구네 엄마, 우리 엄마, 친구네 아빠, 우리 아빠.
이 비교가 아이 마음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으로도 연결돼.
"우리 엄마는 왜 저렇게 안 입을까"가
어느 순간 "나는 왜"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거지.
어른들 눈엔 그냥 옷차림인데,
아이 눈엔 그게 자기 자존감의 일부가 되는 거야.
사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보여줘야 할 이유는 없어.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멋있고 예쁘게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운동화에 청바지 정도는 입고
등하원하러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
이게 엄마만의 얘기는 아니야.
아빠도 마찬가지지.
등하원 데려다주는 아빠들도 많아진 요즘,
똑같은 얘기가 적용돼.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신고 아이 손잡고 가는 아빠와,
깔끔하게 운동화라도 신고 가는 아빠.
아이 눈엔 그 차이가 분명히 보여.
등원 길에는 다들 부스스하게,
급하게 아이 챙기고 입히고 먹이느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부모도 분명 있더라구.
그런 부모들 보면 나조차도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아이는 안 그럴까?
물론 디자인이 예쁘고 깔끔한 크록스도 있을 수 있지.
그리고 "나만 편하면 됐지, 다른 사람 시선이 무슨 상관이야" 할 수도 있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할 수도 있고.
그런데 그게 사실 시간 문제가 아니더라고.
전날 밤에 입을 옷 하나, 신을 신발 하나만
현관 앞에 미리 꺼내두면 끝이야.
아침에 고민할 필요도 없고,
더 일어날 필요도 없어.
운동화 한 켤레를 그냥 현관에 상시 놔두는 것만으로도
크록스 신을 일이 확 줄어.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게 매일을 바꿔.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자는 거야.
내가 언제 내 자신에게 그렇게 많이 투자를 했을까.
멋진 옷을 사고, 멋진 구두를 사고, 화장품을 사고.
물질적인 투자를 말하는 게 아니야.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하루 중 어느 정도 시간을
나를 위해 썼냐는 거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출근길이 가장 멋진 하루의 시작이였잖아.
등원하는 길과 하원하는 길은
어쩌면 아이에게는 출퇴근 같은 거라 생각해.
내가 멋있으면 내 아이도 멋진 모습으로
등원하고 하원하게 되는 거고,
단지 크록스로는 그 느낌이 덜 전달될 수 있다는 거야.
슬리퍼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하원 길에는
크록스를 신지 않게 됐어.
현관에 운동화 한 켤레, 그거 하나면 충분했어.
스타필드에서 크록스 할인 행사를 해도,
이제는 잠깐 쳐다보고 말지.
그런 생각 때문인지 인스타를 보면
크록스 자주 신으면 아이 성장에 좋지 않다는 내용만 눈에 띄더라.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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