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대화는 늘어나는데, 왜 더 외로워지나
AI와 대화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질문을 던지면 즉시 답이 오고, 감정을 털어놔도 비난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많이 연결된 것 같은데, “관계가 얕아지고 외로움이 커진다”는 말이 자꾸 들린다. 이 역설은 왜 생기는가. 답은 단순하다. 대화가 늘어난 것과 관계가 쌓이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너무 쉽게 만들어낸다
가로등 두 개가 멀리서 보이면 순간 얼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점 두 개만 있어도 뇌가 “눈”을 먼저 찾아내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파레이돌리아라고 부른다.
여기에 말투나 반응이 조금만 더해지면, 우리는 기계를 기능이 아니라 “누군가의 태도”처럼 받아들인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같은 1인칭 말투
타이핑 중… 같은 신호
기다림과 반응의 리듬
이런 단서가 붙는 순간, 화면 속에 ‘거기 있는 느낌’이 생긴다. 이게 사회적 현존감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그 ‘거기 있는 느낌’이 너무 편하면, 실제 사람에게 연락할 에너지가 줄어든다.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은 기분”은 생기는데, 정작 관계는 쌓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편리함은 관계의 ‘불편’을 지워버린다
사람 관계에는 불편이 있다. 타이밍을 맞춰야 하고, 거절당할 수도 있고, 말이 어긋날 수도 있다. 반면 AI는 기다릴 필요가 없고 상처받을 위험도 적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위험이 적은 쪽으로 이동한다.
이 선택이 반복되면,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작은 근육이 약해진다.
먼저 연락하기
어색함을 견디기
갈등을 조정하기
그러다 보면 사람 관계가 더 어렵게 느껴지고, 다시 AI로 돌아가게 된다. “더 편한 쪽”이 “더 익숙한 쪽”이 되기 때문이다.
‘진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 사례도 있다
“AI는 다 나쁘다”가 아니다. 진짜로 고립된 사람들, 특히 노인 외로움에서는 기술이 ‘작은 행복’을 만든 사례가 있다.
말이 많지 않아도, ‘반응하는 존재’가 위로가 되는 경우
뉴욕주 노인복지국(NYSOFA)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에게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로봇 반려동물을 제공해왔다. 만지면 반응하는 작은 존재가 “누군가가 곁에 있는 느낌”을 만들고,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점은 간단하다. 외로움이 심한 순간에 꼭 “깊은 대화”가 필요한 게 아니다. 따뜻한 반응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하기도 한다.요양시설에서 동반 로봇이 외로움을 낮춘 연구도 있다.
물범 모양 동반 로봇 PARO는 요양시설 환경에서 진행된 무작위 대조 시험에서, 로봇과 상호작용한 집단의 외로움이 감소했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핵심은 “사람을 대체하는 친구”가 아니라, 정서적 완충을 만드는 장치였다는 점이다.
AI가 먼저 말을 걸고 루틴을 제안하는 ‘ElliQ’ 같은 시도
NYSOFA는 노인 대상 AI 동반 로봇 ElliQ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외로움 감소를 보고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냥 대화 상대”가 아니라, 먼저 제안하고, 작은 행동을 꺼내주는 설계에 있다.
행복을 주되, 의존은 키우지 않으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이쯤에서 결론은 단순해진다. AI/로봇이 행복을 줄 수 있느냐는 “기술의 선악”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설계했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기준이 두가지 있다.
대체(Substitute): AI 안에 오래 머물게 만들어 사람 관계를 약화시키는가
다리(Bridge): 잠깐 안정시킨 뒤 사람/현실로 이어주는가
대화의 끝은 ‘더 대화’가 아니라 ‘현실 행동’이어야 한다.
“한 줄 안부 보내기”, “내일 산책 약속 잡기” 같이 부담 없는 행동으로 닫아야 한다.친밀함은 기본값을 낮게, 필요할 때만 올려야 한다.
너무 사람 같은 말투/애칭은 쉽게 의존을 만든다. “따뜻함 다이얼”처럼 조절 가능해야 한다.과사용 신호에는 ‘부드러운 쉬어가기’를 줘야 한다.
심야·장시간·반복 사용일수록 “잠깐 쉬기/타이머로 마무리” 같은 선택지가 필요하다.
AI를 더 사람처럼 만들기보다, 사람에게 더 닿게 만들어야 한다
AI는 점점 더 사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특히 고립된 노인처럼 “진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작은 안도감과 일상의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따뜻함이 관계를 대신해버릴 수 있다. 그래서 AI는 친구가 아니라, 연결의 다리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기술은 외로움을 덮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조금씩 회복시키는 쪽으로 작동할 것이다.
디논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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